카오루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고백을 받을 거라고 짐작 한 것은 아니다. 다만 후배의 저 곧은 눈 때문에 곤란해질 일이 언젠가 한번쯤은 올 것이라 죽 생각하고 있었던 바이다. 일단 사과부터 해야지. 그 ‘언젠가’를 위해서 여러 번 연습했던 사과의 말은 생각을 거치지 않고 바로 튀어나왔다. 사고는 내가 칠 줄 알았는데 설마 반대일 줄은. 카오루는 속으로 혀를 찼다. 하지만 딱히 어색한 대답은 아니었기 때문에 첨언은 하지 않았다.
아도니스는 실망하지 않고 카오루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카오루는 아도니스의 저 시선이 마주하기 어려웠다.
“알고 있다. 선배를 곤란하게 할 생각은 없다. 그냥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응, 이미 충분히 날 곤란하게 하고 있어, 오토가리군. 이번에는 진짜로 혀를 차 버린 모양이었다. 아도니스가 흠칫 하더니 입술을 깨물었다. 연습한 말이 있는 것은 아도니스도 마찬가지일 텐데, 그것이 입 밖으로 새어나오지 못하게 이로 꾹 막고 있다. 고백을 거절하는 것은 한 두 번이 아니지만, 카오루는 늘 그 공기가 싫었다. 잘못한 것도 없이 죄지은 기분이 되는 것은 언제나 달갑지 않다. 소리가 되지 못한 말들만 두 사람 사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느 때라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더더욱, 침묵을 깨기란 어려운 일이다. 먼저 포기한 것은 아도니스였다.
“…남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어서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미안하다.”
아도니스가 얼굴을 아래로 숙이자 카오루는 드디어 숨통이 좀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키는 똑같지만 카오루보다 체격이 더 좋은 후배가 오늘은 이상하게 작아보였다.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아까보다는 말이 매끄럽게 나왔다. 카오루는 심지어 미소 비슷한 것도 지을 수 있었다.
“아니, 아니. 나도 딱히 네가 싫다던가 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난 연애는 안 하는 주의라서….”
“여자아이들과 사이가 좋아보였다. 그건 사귀는 것과는 다른가?”
“그건 노는 거. 사귄다던가 하는 걸로 묶이고 싶지도 않고. 부담 없이 기분 좋게 놀고 서로 집착하지 말자는 주의야.”
고백 받은 상대가 아도니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구구절절 스스로의 연애관을 주워 삼킬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평소와 달리 말이 많아진 것은, 이 쯤 되면 아도니스가 질려서 호감을 거두어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상대들과는 달리 유닛 활동으로 계속 얼굴을 마주해야하기 때문에, 찜찜한 여운 없이 깔끔하게 끊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카오루는 저 후배가 어느 정도로 진심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알기 무서워서 덮어놓고 외면했기도 하다. 그래서 눌러 덮은 힘만큼의 반작용이 그대로 돌아왔다.
“…그럼 나랑도, 놀아주었으면 한다.”
“응?”
“선배는 아까 딱히 내가 싫지는 않다고 했다. 연애를 할 필요는 없다. 부담 없이 노는 것이라면, 나를 상대로도 가능 할 것이다.”
“아니, 너, 논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하는 이야기야? 해 본 적이나 있어?”
카오루는 완전히 당황했다. 평소의 카오루였다면 좀 더 다른 질문을 했을 것이다. 완전히 무시하고 그 자리를 떠나버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화는 시작부터 카오루의 페이스에는 맞지 않았고 아도니스는 유감스럽게도 카오루를 기다려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연습해 오겠다.”
“그, 그래….”
후배를 갖고 놀 생각으로 승낙 한 것은 결단코 아니었다. 어디까지 가나 하는 기막힘이 있기도 하고, 차라리 좀 상처를 주더라도 아도니스가 스스로 물러나도록 하고 싶었다. 밀어낸다고 밀려날 아도니스도 아니었고, 카오루가 물러나려니 더 이상 물러날 구석도 없었다. 제발 진짜로 하기 전에 겁먹고 발 빼기를. 카오루는 그렇게 생각했다.
고백을 받은 지 이틀이 지났다. 그동안 아도니스는 끈적한 시선을 보내지도 않았고 안달복달하며 주변을 맴돌지도 않았다. 모든 게 평소와 같았다. 카오루는 그게 꿈이 아니었나 생각하기까지 했다. 꿈이라면 정말 좋을 것 같았다. 요즘 스트레스 받는 일이 많아서 그런 꿈을 꾼 거야. 그러니까 이번 주말에는 맛있는 것도 사먹고 재미있게 놀아야겠다. 그리고 청소년 심리상담 센터에 가서 자살예방 교육이나 들어야지. 코가와 함께 안무를 맞춰보는 아도니스를 연습실 구석에 멍하니 보고있던 카오루에게 레이가 말을 걸었다.
“잠깐 시간 되나? 이야기 할 게 좀 있으이.”
“아, 네 말씀하세요. 사쿠마씨.”
레이는 연습 중인 2학년들을 흘끗 보고는 목소리를 죽였다.
“아도니스군이 어제 나한테 와서 남자끼리 관계하는 방법에 대해서 묻던데. 짚이는 바가 있겠거니 해서 말일세.”
아니다. 역시 그냥 자살해야지. 손에 쥐고 있던 페트병이 우그러지는 소리가 났는지, 코가가 잠깐 이쪽을 돌아보았지만 곧 시선을 돌렸다. 어차피 레이는 다 알고 왔을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 직후 표정관리를 못하기도 했지만, 이 사람에게는 숨겨도 소용없을 거라 생각한 카오루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걸 왜, 사쿠마씨에게…?”
“음, 나는 나이로는 성인이니까.”
섹스와 관련된 이야기는 성인에게 물어본다. 정말로 아도니스다운 사고방식이었다. 인터넷으로 적당히 그 쪽 사이트나 들어갔다가 기겁해서 돌아나올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쉽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하셨는데요.”
“아는 만큼은 다 알려줬네.”
“미쳤어요?!”
이번에야 말로 코가가 완전히 돌아보았다. 어이, 무슨 일이야? 화내는 듯 걱정스러운 듯 물어보는 목소리가 들렸다. 기본적으로 이 유닛의 2학년들은 다 착한 아이들이다. 그게 문제지. 얼굴을 감싸 쥐고 고개를 숙인 카오루 대신에 별 일 아니라며 손을 휘 휘 저은 레이가 카오루 옆에 주저앉았다.
“변명하려는 건 아니다만 내가 안 알려주면 양호실에 물으러 갈 기세였으이.”
“…그랬나요….”
“뭐어, 이대로 모르는 척 넘어갈 수도 있지만.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제 뭐가 더 나와도 놀라지야 않겠지만 그래도 평정을 유지할 자신은 없었기 때문에, 카오루는 손에 얼굴을 묻은 채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충 짐작이 가기도 했다.
“근시일 내에 실습 해 볼 예정 같길래 걱정이 되어서 말일세.”
“…그랬군요….”
내일은 금요일이다. 아도니스의 머릿속이 그림으로 그린 듯 빤히 보였다. 쟤를 정말 어쩌면 좋지. 카오루는 절망감과 탈력감이 반쯤 뒤섞인 표정으로 비척비척 일어났다. 마른세수를 한 번 하고는, 눈으로 묻는 레이에게 대답했다.
“저 오늘은 연습 좀 쉴게요.”
“그러게나.”
한창 연습 중이었는지라, 코가나 아도니스에게는 따로 인사는 하지 않고 연습실 문을 나섰다. 나서는 길에 거울로 시선이 맞았으니까, 일찍 자리를 뜨는 것을 알기는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