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미뇽님이 처음 가져오신 로토끼 썰이 있었는데요... 어쩌다보니 발냥이도 나오고....
그러다보니 로토끼 키우는 발렌타인이랑 발냥이 키우는 로우위가 서로 썸타는데 동물들끼리 지네 주인 욕도 같이 하다가 이자식아 까도 내가 까 하면서 싸우다가 정도들고 동물들이 정드니까 주인들도 정 드는 뭐 그런 망한것도 생각이 나고 그딴거없이 로토끼사람이나 발냥이사람도 나오고 뭐 그랬습니다. 동물은 좋지요. 치유되니까.
햇살이 좋았다. 이런 날은 빨래도 잘 마른다. 집안일을 달가워하지 않는 발렌타인이었지만 가끔 기분전환삼아 몸을 움직이는 건 싫어하지 않았다. 발렌타인은 침대며 소파에 걸쳐 있는 얇은 담요들을 싹 걷어내 세탁기 속에 넣었다. 잘 말리면 하루 이틀 만에 잘 마를 것이다. 날씨가 많이 풀려서 추위를 많이 타는 군식구도 낮 동안은 담요 없이도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세탁기가 웅웅거리기 시작하면서 물이 콸콸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시끄러워서 낮잠을 깼는지, 방 안쪽에서 나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타박타박.
한참 들려왔다. 타박타박 타박타박.
발렌타인은 발목께에서 불만스럽게 코를 비비는 토끼를 들어올렸다.
“아, 깼어, 로우 위?”
토끼가 코를 씰룩거렸다. 세탁기 소리가 불만스러운 모양이었다. 돈을 적게 버는 건 아니지만, 발렌타인은 부모님이 사용하던 가구들을 거의 그대로 쓰고 있었다. 어머니는 훌륭한 주부는 아니었지만 꼼꼼하고 성실한 사람이었고, 가구나 가전제품들은 대체로 깨끗하고 손질이 잘 된 상태로 남아있어서 버리기 애매했던 것이다. 덕분에 혼자 자면서 킹사이즈침대에 활개를 다 뻗고 자는 버릇이 들어버렸지만 그것도 금방 고쳐졌다. 식구가 늘었지만 침대를 새로 살 필요가 없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다행이었다.
오래된 세탁기는 옷을 빠는데 문제는 없었지만 요즘 나온 것들보다 덜덜거림도 심하고 소리도 컸다. 물이 어느새 다 채워졌는지, 안에 있는 세탁통이 돌아가는 박자에 맞춰 세탁기가 쿵쿵 흔들리기 시작했다. 토끼가 앞발을 버둥거리며 화를 냈다. 발렌타인은 문득 장난기가 돌아서 세탁기 뚜껑 위에 토끼를 올려놓았다. 퍼뜩 뛰어오르려던 토끼가 움찔했다. 침대와는 달리 세탁기는 발렌타인의 갈비뼈 정도까지 오는 높이이다. 조그마한 토끼가 뛰어내리기에는 겁이 날 법도 하다. 코팅된 플라스틱 뚜껑은 아주 미끄럽지는 않았지만 세탁기의 진동에 따라 덜컹 할 때 마다 토끼의 작은 발이 조금씩 미끄러졌다. 토끼가 불만스럽게 코로 삐삐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세탁기에 좀 익숙해지도록 해, 로우 위. 네 담요를 빤다고 고생 중인 녀석이라고?”
토끼가 불만스러운 듯이 앞발로 세탁기 뚜껑을 탕탕 치다가 다시 덜컹이는 통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발렌타인은 피식 웃었다. 친해지기 전에는 안내려줄 거야. 힘내~ 토끼를 그대로 내버려 둔 채 발렌타인은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거실로 들어왔다. 세탁실이 잘 보이도록 문을 열어두고 소파에 늘어져 누웠다. 토끼의 삑삑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발렌타인은 햇빛을 즐겼다.
눈을 뜬 건 어쩐지 가슴이 묵직했기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오 분 쯤만 있다가 토끼를 내려준다고 생각했던 것이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아, 맞다. 로우 위!”
기겁해서 몸을 일으키려는데 무거운 것이 내리누르고 있어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눈앞에는
“이제 깨어난 건가, 이 잉여.”
엄청나게 열 받은 얼굴로 발렌타인을 내려다보고 있는 로우 위가 있었다. 하얗고 야들야들하던 토끼귀가 빳빳하게 서 있다. 발렌타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 가슴팍이 오르락거리자 거기를 깔고 앉아있던 로우 위가 움찔하다가 다시 발렌타인의 어깨를 단단히 잡았다.
“아, 저기, 그, 로우 위, 님.....? 제가 일부러 방치를 한 건 아니고, 그게,”
“닥쳐”
사람 모습으로 돌아온 걸 보니 이미 해가 기울고 있는 모양이었다. 햇볕에 빨래를 말리기는 다 글러먹었군. 발렌타인은 혀를 찼다. 그리고 빨래보다 더 큰 문제인 눈앞의 동거인을 다시 바라보았다. 세탁기 위에서 세 시간 동안 방치한 죄 값은 대체 뭘로 치러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발렌타인은 일단 진심어린 사과라도 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