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 미정... 10P는 넘을거 같은데 20이 될지 그보다 확 줄지 늘어날지.. 진짜 모르겠네요.. 견적이 안나와서 그냥 무료배포합니다ㅎㅎㅎ...ㅎ...ㅎㅎㅎ..
읽으시기 전에 주의..
※ 본편 40화 이후~엔딩 사이의 한 시점을 다루고 있습니다(며칠 정도의 날짜가 본편 설정과 좀 어긋날수도 있지만 큰 흐름은 다르지 않습니다)
※ 저 개인적으로는 크림 스타인벨트를 좋아하지만 내용상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평가가 좀 들어 있습니다.
※ 신하트 19금입니다.
※ 지면에서는 대사("")부분에 줄띄움 따로 없습니다.
토마리는 급하게 갓길에 차를 세웠다. 무어라 외치려고 하는 벨트의 패널을 손바닥으로 막으며-벨트의 음성을 그곳을 통해서 나오지는 않았지만 벨트도 황급히 소리를 줄였다-토마리는 걸음을 옮겼다. 교통량이 적은 국도 가장자리에는 낡은 가드레일이 도로를 따라 세워져 있을 뿐이었다. 물웅덩이를 피해 가드레일을 넘은 토마리는 변명처럼 심어져 있는 관목을 헤치고 도로변의 비탈길로 걸어갔다. 나뭇잎에 맞고 튕겨 나온 물방울들이 토마리의 어깨를 적셨다.
“신노스케, 변신을 하는 것이….”
“괜찮아, 벨트씨.”
벨트가 소근거렸지만 지척이었기에 대화는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미동도 없이 하늘을 보며 그대로 서 있었다. 주변에 다른 이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토마리는 여상하게 말을 붙여보기로 했다.
“뭐 하는 거야?”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지.”
돌아보지도 않은 채 하트가 대답했다. 머리카락을 타고 내려온 빗물이 코트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낮부터 쏟아진 비는 이제 기세가 약해져 안개처럼 허공에 깔려있었다. 하지만 코트자락이 물을 잔뜩 머금고 축 늘어진 모습을 보면 하트는 최소 서너 시간은 비를 맞은 것 같았다.
“일기예보에는 내일 새벽까지 비가 내린다고 하던걸.”
그러니 그만 들어가지 그러냐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전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하트는 고개를 저었다. 턱 끝에 매달린 물방울이 흩어졌다.
“아니면 해가 지기를.”
토마리는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4시 21분. 오늘의 일몰시간은 오후 7시 반 경이다. 밤이 내리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다. 물론 하트는 인간이 아니니 감기에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기계는 물에 취약하지만 인간태로 있는 지금은 그것도 관계없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어쩐지 토마리는 계속 비를 맞고 있을 작정인 하트를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최소 세 시간은 더 서있을 작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 시점에서는 더더욱. 잠시 고개를 내저은 토마리는 자동차로 발걸음을 돌렸다. 하트는 돌아보지 않았다.
“당장 전투를 벌일 생각은 없어 보이지만, 신경 쓰이는군.”
“아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낮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는 벨트에게 대답하며 토마리는 자동차의 트렁크를 열었다. 분명히 이주 쯤 전에 동기의 결혼식 답례품으로 받고는 그대로 트렁크에 쑤셔 넣은 것이 있었다. 토마리의 예상대로 검은 종이상자가 보였다. 상자에는 대문짝만하게 토마리 신노스케님에게 감사의 인사말이 적혀 있었지만 다행히 우산은 아무런 문구도 없는 보통의 것이었다. 우산을 펴 드는 토마리의 귀에 기가 막힌 듯한 벨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노스케, 설마하니 싶지만 그건…,”
“미안, 벨트씨. 잠깐 차에서 기다려줘.”
“신노스케!”
우우웅하고 진동을 하는 벨트를 풀러서 차 안에 둔 토마리는 다시 몸을 돌렸다. 이런 안개같은 비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나을 것이다. 하트는 차로 돌아갔던 토마리가 다시 접근하는 기색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만, 머리 위로 그늘이 드리우자 토마리를 돌아보았다.
“아하하하하하!”
인간이라면 으레 보일, 허리를 꺾거나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동작도 없이 웃음이 쏟아져 나왔지만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머쓱한 기분을 느끼는 것은 변함없었기 때문에 토마리는 헛기침을 했다.
“다 웃었으면, 받지?”
뻗은 손은 우산의 손잡이를 지나쳐 토마리의 손목을 잡았다. 고통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지만 단단히 붙잡혀 손을 빼낼 수는 없었다. 토마리의 허리께를 향해 턱짓하며 하트가 말했다.
“그건 어디 갔지? 차에 두고 왔나?”
“벨트씨를 그렇게 물건 다루듯 말하지 마. 내 동료야.”
말을 하면서도 혀가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약간 굳은 토마리의 얼굴은 분노와는 좀 다른 색깔을 띠고 있었다. 하트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말하면서도 웃기다는 생각은 하고 있나보지?”
기계생명체에게 데이터로 이루어진 인격의 존엄성을 논하는 인간. 우스운 꼴이라는 것은 토마리 자신도 잘 알고 있었지만 내뱉은 말을 되돌리지는 않았다.
“왜 그렇게 벨트씨를 싫어하는 거야? 지난번 이야기로는 오히려….”
반노 박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 바로 일주일 전이었다. 충격적인 이야기였기에 그보다 시간이 더 지났더라도 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날 밤은 짧은 악몽을 꾸고 깨어났었다. 하지만 토마리는 크림 스타인벨트가 하트의 손에 살해당해야 했던 이유를 더더욱 찾을 수 없었다. 함께 연구를 했기 때문에? 반노에게 반대하고 중도에 나간 사람을 굳이 찾아가서 죽였어야 할 만큼 창조주에 대한 증오가 깊었던 것일까. 오래봤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동안 토마리가 지켜본 하트라는 자는 그런 성격이 아닐 터였다. 진지한 토마리의 눈빛을 마주보던 하트가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우산은 여전히 건네받지 않았기 때문에 토마리는 그대로 우산을 들고 섰다. 빈손을 그대로 들어 올린 하트가 이마를 감싸 쥐었다.
“감정을 가진다는 것은 기쁜 일이야, 토마리 신노스케.”
하나도 기쁘지 않은 목소리였다.
“어떤 의미로는 나에게 그는 스승이지.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거든.”
***
빗줄기가 거세지고 있었다. 창문이 부서져라 두드려대는 물방울들에 창밖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회색 하늘 뒤편으로는 아직 해가 남아있어 유리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기에는 어둠이 부족했다. 로이뮤드002는 차라리 얼른 밤이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밖을 볼 수 없다면,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소망을 가진다는 것은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일이었다. 바라고 원하는 것은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할 수 있는 자들만이 할 수 있는 고등사고이다. 인간에 거의 가깝게 발달된 지능은 상상력을 가질 만큼 영리했고 그래서 상황에 대한 판단은 소망 이전에 이미 체득한 기능이었다. 로이뮤드002는 상황을 판단했다. 그럼에도 소망했다. 그렇게 소망과 동시에 포기도 배울 수 있었다. 비는 멈추지 않을 것이고 해는 아직 지지 않는다.
창 밖 먼 하늘에서 번개가 치며 시야가 점멸했다. 비유적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로이뮤드002의 눈앞에서도 전기가 튀었다. 전기충격기는 일반인이라면 즉사했을 만큼 전압이 올라간 채였고, 인간의 몸을 의태중인 로이뮤드의 신체 역시 일순간 심장을 강하게 수축시켰다. 가슴 한 가운데에서 쥐어짜는 듯 한 통증이 올라오다가 피가 확 몰리며 눈앞이 새빨개졌다. 몸이 뒤로 크게 휘청거렸지만 기어이 버티고 선 로이뮤드002의 모습을 보면서 반노 텐쥬로는 환호했다.
“하! 학습했군, 드디어!”
로이뮤드002가 보인 2개월 만의 성과였다. 처음 3주간은 아무런 반응도 돌려주지 못하고 그저 주어지는 자극을 수용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생명체에게 고통을 회피하는 본능은 입력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20여일이 지나고 처음으로 로이뮤드002가 다리를 움츠리며 뒤로 물러났을 때, 반노는 춤이라도 출 기세였다. 명령이 주어지지도 않았건만 신체의 안전을 위해서 회피하는 동작을 스스로 깨우친 것이다.
그리고 다시 40일. 이제는 그 만들어진 본능을 다시 억누르고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한 바퀴 돌아서 제자리로 온 것이지만 과거와 같은 자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신체의 안전이라는 목표를 위한 학습의 성과였다. 피하면 피할수록 더 강도 높은 충격을 주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 만들어진 자연스러움은 반노를 짜릿하게 했다. 자연스러운 반응, 자연스러운 감정. 중요한 것이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박수갈채와 같다고 생각하며 반노는 전압을 높였다. 몸의 반응을 무시하고 뇌가 명령을 내리는 것은 확인했다. 이제는 그 뇌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가를 알아볼 차례였다. 크림 스타인벨트가 실험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다섯 번째인가 여섯 번째로 올린 전압에 기어이 로이뮤드002가 바닥에 쓰러진 순간이었다.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거냐, 반노…!”
경련하듯이 떨리는 로이뮤드002의 어깨를 감싸 일으키며 크림 스타인벨트가 반노에게 소리쳤다. 음성을 기계적으로 분석한다면 공기가 떨리는 정도를 알아내는 것이 고작이다. 하지만 기계임이 분명한 로이뮤드002는 그 이상의 것을 알 수 있었다.
세계는 개인이 인식한 만큼 존재한다. 인간이 아닌 로이뮤드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 로이뮤드002의 세계가 넓어졌다. 로이뮤드002는 상황에 대해 판단할 때 감정을 넣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크림 스타인벨트가 실험실 문을 박차고 나간 순간, 그 감정의 이름도 알 수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로이뮤드002를 그대로 둔 채 반노는 실험실 문을 나섰다. 곧 전기가 차단되어 방 안의 불이 꺼졌다. 이제는 해가 져도 방 안의 모습은 유리에 비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