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간론파/글
사이오마) 라이어x라이어 (1)
마감 성공하면 12월 디페에 나옵니다..
뉴단 본편 이후 베니자케로 연동되는 설정
77기는 본편 이후 아일랜드 모드를 겪고 미래기관에 취직한 설정
단3이랑 시공이 다릅니다....
00.
"이건 네 치료이기도 해. 사이하라군."
나에기 마코토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다. 상대를 억누르거나 제압하는 강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감싸 안아주는 따스함이 있는, 하지만 심지 굳은 힘이다. 그런 목소리로 해 주는 설명을 듣고 있노라면, 정말로 마음을 옥죄고 있는 사슬도 다 풀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사이하라는 고교생이기 이전에 탐정으로서 그것을 인식했다. 탐문을 한다면 정말로 좋은 탐정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다.
탐정으로서의 감에 하나를 더 걸어보자면, 나에기는 정말로 사이하라를 속이기 위해서 입발린 말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이하라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어른이자 같은 일을 겪은 선배로서 할 수 있는, 나에기의 최선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또한 자신 역시 최대한 전력으로 나에기에게 협력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이하라는 나에기의 말에 반론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것만은 정말로 확인해야 했다.
“왜 하필 연애 버라이어티 방송이죠…?”
“…….”
존경하는 선배는 사이하라의 시선을 피했다. 나에기의 시선이 가 닿은 자리에 있던 피부가 가무잡잡한 여자 역시 시선을 토스라도 하듯이 다음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폭탄 넘기기라도 하듯이 방 안을 한 바퀴 돌아서 토스되고 토스 된 시선의 끝이, 흰 머리가 몽실몽실한 남자에게 도착했다.
"아핫, 나 같은 쓰레기의 설명이라도 사이하라군이 납득 할 수 있다면, 내가 설명할게!"
"넌 그냥 입 다물고 있어."
한숨을 푹 쉬면서, 히나타 하지메가 말을 끊었다. 사이하라의 눈 앞에 제법 두툼한 서류 봉투가 내밀어졌다. 사이하라는 조금 머뭇거렸지만, 조심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었다.
<프로젝트 베니자케; PTSD 치료 프로그램 계획>
심각한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게도 황당한 내용이었지만 확고한 목적이 있다는 것은 느껴졌다. 끝까지 다 읽은 후에도 완전히 납득 할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지금 사이하라의 눈앞에 있는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결과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사이하라는 떨리는 손을 들어, 서류에 서명을 했다.
다음날 바로 후회했다.
1.
“사이하라쨩, 역시 내 뒤를 노리고 있는 거야? 기뻐~ 사이하라쨩에게라면 나, 소중히 간직해 온 처녀를 줄 수 있어! 거짓말이지만!”
거짓말이라는 건 처녀 부분이야, 줄 수 있다는 부분이야? 질문이 목구멍 끝까지 튀어나왔지만, 사이하라는 가까스로 말을 삼켰다. 시청자를 의식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제대로 된 대답은 들을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열흘짜리 연애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주회 6회 째. 즉, 함께 보낸 시간이 50일 하고도 이틀이 더 지난 시점에서도 오우마는 사이하라에게 절대로 진심을 내비치지 않고 있었다. 다양한 의미로 난공불략의 상대였다.
물론 오우마의 기억 안에서는 사이하라는 만난 지 이틀이 지난 사이일 뿐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만큼이나 비슷한 작업을 반복하다보면 나름의 감이 생긴다. 이틀째에 이 모양이라면 이번 회차도 글러먹었다.
사이하라는 한숨을 쉬면서 곤타를 향해 달려가는 오우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살인게임에 말려들었을 때의 기억이 없을 텐데도, 오우마는 이상하게 곤타에게만은 제 나름의 상냥함을 보이고 있었다. 애초에 곤타군의 성품이 주변에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크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졸업 요건을 채울 만큼 곤타에게 마음을 터놓지는 않는 모양이라서, 결국 지난 5회차 동안 졸업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것은 오우마 한 명 뿐이었다.
“오우마군만 통과하면 제1단계는 클리어인데 말이야….”
“클리어? 무슨 이야기야?”
“히에엑?!”
갑작스럽게 뒤에서 들리는 모모타의 목소리에 사이하라는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모모타가 뒤통수를 긁으면서 의아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놀라냐, 슈이치.”
기억이 매번 리셋 되더라도 한 번 쌓인 관계의 깊이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이었다. 지금 모모타의 기억 속에 있는 사이하라는 만난 지 이틀 된 조금 음침한 탐정견습생이지만, 이유모를 신뢰감과 친근감을 주는 녀석인 것이다. 사이하라는 최대한 표정을 관리하면서 모모타에게 대답했다.
“아, 치, 친구 100명 만들기…, 일까? 다른 모두와는 꽤 가까워 질 수 있었는데, 오우마군만은 어쩐지….”
“전부 16명 밖에 없는 상황에서 무슨 친구 100명이야?”
엉뚱한 녀석. 모모타가 웃으면서 사이하라의 등을 펑펑 쳤다. 꽤 아팠지만 그것은 반가운 아픔이어서, 사이하라는 그냥 웃으면서 모모타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참고로 모모타는 첫 회차에 사이하라와 함께 졸업했다. 말로만 연애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지, 결국은 교류와 정서교감을 통한 트라우마 치료가 목적인 것이다. 첫 주차에 버벅거리면서 어찌어찌 아카마츠와 모모타, 둘 모두와 졸업 요건을 채워버린 사이하라가 졸업을 고민하고 있을 때 프로그램 피디-물론 미래기관의 모니터 요원들이었다-가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세 명 모두 졸업을 선언했었다. 사이하라군, 좀 더 힘내면 한 주차에 네 명도 가능할지 몰라. 마시면 이유모를 기력이 솟아서 하루 3번 데이트를 갈 수 있는 수수께끼의 음료수를 건네면서-어차피 데이터였지만, 유료 아이템이라서 사이하라는 자주 사용하지 못했다- 코마에다 나기토가 방긋 웃었다. 저는 히나타씨랑은 달라요. 힘없이 대답했지만 어쨌든 음료수는 고마웠기 때문에 받아두었던 기억이 난다.
미래기관에서 시행하는 가상 세계를 이용한 심리치료는 이미 그 형태가 꽤 발전되어, 크게 어려운 일 없이 우정을 쌓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잘 다듬어져 있었다. 히나타 하지메와 키보가미네 학원 77기생이 받은 것처럼 공동의 목표를 함께 이루는 쪽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첫 살인이 일어나기 전 지하수로에서 겪었던 기억이 플래시백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각하되었다고 한다. 육체노동을 좋아하지 않는 사이하라의 입장에서는 다행한 일이었다.
상태 파악과 보호를 위해서 모니터링은 어쩔 수 없이 있어야 하지만, ‘누군가에게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괜한 의심과 스트레스를 줄 수도 있다. 어설프게 숨겼다가 들통이 날 바에야, 처음부터 감시 카메라에 대해서 오픈하자는 것이 모두의 의견이었다. 그것을 최대한 평화롭고 바보 같은 느낌으로 설득시키기 위해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형태를 갖고 온 것은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었다. 관계에 소극적인 사람이라도 졸업을 위해서 움직인다면 명분이 생기면 어떻게든 노력 할 것이라는 취지도 꽤 맞아 떨어졌다. 실제로 2회차 때는 어느 정도 심리적 안정을 찾은 아카마츠와 모모타가 각자 다른 사람과 졸업을 했다. 기억이 없어도 졸업의 효과가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형식은, 오우마와는 최악의 상성이 아니었을까. 5회의 프로그램 내내 이리저리 빠져나가기만 할 뿐, 진심은 절대 내보이고 있지 않은 오우마를 보면서 사이하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가짜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처음부터 명확히 밝힌 무대를, 저 거짓말쟁이 총통이 기꺼워 할 리가 없는 것이다.
“후후후, 사이하라군…. 그럴 때는 말이지. 우선 몸부터 가까워지는 거야. 알겠어, 무슨 의미인지…?”
왜 하필 오늘 담당은 이 사람일까. 사이하라는 의자에서 최대한 엉덩이를 뒤로 붙이면서 조금 물러났다. 화면 너머로 보이는 하나무라 테루테루의 얼굴이 점점 더 발그레하게 달아올랐다.
“사이하라군 같은 미소년 타입은 나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지만 말이야. 아, 물론 우리 히나타군 스타일의 건강한 남자아이도 좋았지만! 히나타군은, 남국의 뜨거운 밤을 함께 보내면서 우리 모두를 함락시켰지….”
“너랑은 밤을 보내지도 않았고 어차피 넌 그때 일은 기억도 못 하잖아.”
비켜, 하고 하나무라의 머리를 밀어내면서 히나타 하지메의 얼굴이 모니터를 차지했다. 말의 내용에 약간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지만 일단 묻어두기로 하고, 사이하라는 아까보다는 훨씬 더 믿음직한 상담자에게 말을 건네었다.
“대체 사이온지씨랑 코마에다씨는 어떻게 공략하셨어요?”
“왜 그 둘…, 아니, 응…. 이유는 말 안 해도 괜찮아.”
히나타 하지메의 미간에 주름이 꽉 잡혔다. 몇 년 전의 추억을 되새긴다고 하기에는 조금 고통스러운 표정이었다. 아마 지금의 미래기관 내에서 가장 사이하라의 입장을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잠시 미간을 문지르면서 고민하던 히나타 하지메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단은 뭘 줄 수 있느냐…일까.”
“선물이라면 열심히 하고 있는 데요….”
“아니, 가챠에서 뽑은 것 뿐만 아니라. 결국 인간관계란, 서로 바라는 것이 충족 될 때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잖아?”
욕망의 충족이란 말이지! 잘 알아들었어! 모니터 너머로 하나무라 테루테루의 가성이 들렸다. 눈에 띄게 움찔하는 시이하라와는 달리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히나타 하지메가 말을 이었다.
“결국 지금 상황에서 오우마 코키치가 가장 바라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네가 알아내야 한다고 생각해.”
오우마가 바라고 있는 것. 제대로 마음을 터놓지도 않았는데 그것을 알아낸다는 것은 사이하라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고교생 탐정으로서,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하고 다짐이라도 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사이하라의 조부는 전설의 명탐정 같은 것은 아니었다. 추리의 재능이라면 오히려 자신보다는 저 사람에 더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쩐지 히나타 하지메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조금 시무룩해진 사이하라는 상담시간이 끝나기 전, 조심스럽게 질문하였다.
“참고로 여쭤보는 거지만, 코마에다씨가 가장 바랐던 건 뭐였어요?”
“관심.”
“…의외네요.”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한쪽 손을 들어서 흔드는 히나타 하지메에게 꾸벅 인사를 하면서 사이하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담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다른 누군가에게 들켜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상담은 매번 용건만 간단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눈앞을 가리는 앞머리를 만지작거리면서 침대에 편하게 앉은 사이하라는 한숨을 쉬었다. 오우마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바라고 있는 것. 오우마의 숨겨진 욕망. 오우마가 사이하라를 상대로, 기꺼이 받아들여 줄 수 있는 이상적인 관계. 손쉽게 알아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급적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다. 사이하라는 복잡한 표정으로 책상 서랍을 바라보았다. 켜켜이 쌓아놓은 노트 아래에 숨기듯이 넣어둔 것이 있었다. 열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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