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간론파/글
히코마) 실연의 방향성에 대하여
12월 디페에 나올 예정입니다.
샘플 겸해서 올릴 수 있는 부분은 조금씩 올릴 예정
코마에다가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낸 것은 강 근처의 공원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사용되었을 그 곳에는 벤치와 식수대 외에, 히나타가 오래간만에 보는 것들이 보였다. 그네며 시소, 작은 미끄럼틀 등이 있었다. 부모와 함께 공원에 온 어린이들이 놀 수 있게 설치되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채 몇 년이 지나서, 플라스틱 시트가 거의 다 삭아서 빛이 바래어 있었다. 코마에다가 발을 멈추어 선 것은, 공원의 가장자리였다.
“이 상황에서 별로 어울리는 말은 아니지만,”
코마에다가 발끝으로 바닥을 살짝 문질렀다. 검은 얼룩이 흙 위로 번졌다.
“이거, 어른이 타면 혼나는 걸까?”
“…어?”
히나타는 멍청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하마터면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놓칠 뻔했기 때문에 황급히 다시 손을 추슬렀다. 어차피 던질 생각이었지만, 그 위치에서 떨어트린다면 발등이 위험했다. 코마에다가 말하는 ‘이거’가 무엇일지 둘러보자 바로 알 수 있었다. 녹이 조금 생긴 시소가 근처에 있었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탄 적이 없네.”
히나타는 손에 들고 있던 모노쿠마의 머리를 벤치 너머로 집어 던졌다. 쾅, 하고 무거운 소리가 들렸다. 이미 작은 자동차 정도의 크기로 쌓여있던 둔덕에 다시 머리 하나가 던져지면서 고철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비스트 모노쿠마의 파편들이었다.
“왜, 시소 타고 싶어? 좋아해?”
“으응, 좋고 싫을 것 까지도 없달까…. 타 본 적이 없으니까 몰라?”
피처럼 튀어있는 기름을 피해 바닥을 밞으면서 히나타가 코마에다에게 다가갔다. 조금 전 까지 있었던 전투의 소란은 거짓말인 것처럼 공원의 공기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강에서 불어오는 물기어린 바람이 모래를 옮기면서 낮게 지나갔다. 별 것 아닌 대화인데도 목소리가 낮게 깔리는 기분이 들어서, 히나타는 목을 다시 가다듬었다.
“타 본 적 없다니, 시소를? 한 번도?”
“저건 혼자서 탈 수 없는 기구니까.”
“어…. 놀이터 같은 곳에서는… 모르는 녀석이랑도 그냥 타면 되잖아?”
시소를 바라보고 있던 코마에다가 히나타를 돌아보았다. 얼굴 가득히 의아한 표정이 떠올라 있다. 평소에 빈정거림을 늘어놓을 때도 저런 표정을 짓곤 하지만, 히나타는 미세한 차이를 구분해 낼 수 있었다. 저건 정말로 이해를 못해서 만드는 표정이었다.
“모르는 아이와? 놀아?”
“아…, 넌 어릴 때부터 그런 녀석이었구나….”
“무슨 의미일까, 그건?”
“아무것도 아냐. …뭐, 모처럼 이니까 지금 한번 타 볼…,”
말을 끝맺지 못한 것은 갑작스럽게 들린 폭발음 때문이었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미끄럼틀의 계단이 박살났다. 미사일런처였다. 코마에다와 히나타는 바로 주변을 경계하면서 등을 맞대고 섰다. 중화기가 나왔다는 것은, 모노쿠마가 아니라 사람이 근처에 있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찢어질 것 같은 바퀴의 마찰음과 함께 자동차 몇 대가 코너를 돌아서 나타났다.
차를 엄폐물 삼아서 날아드는 총격에 맨몸으로 맞서기는 힘들다.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권총을 꺼내려는 코마에다의 팔을 붙잡고, 히나타는 황급히 식수대 뒤로 몸을 옮겼다. 불만스러운 시선이 따라왔다.
“저런 총알 따위에…”
“네가 맞을 일은 없다는 거 알지만, 내가 총 쏘려면 이쪽이 편해.”
“…흐응….”
비슷한 주제로 여러 번 말다툼을 한 결과, 그나마 히나타가 얻어낸 가장 적당한 대답이었다. 딱히 거짓말도 아니었기 때문에, 코마에다는 완전히 납득하지는 않은 얼굴이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간간히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면서, 히나타가 식수대 위에 고개를 내밀고 총을 쏘았다. 한 발에 모노쿠마헤드 둘이 쓰러져서 나뒹굴었다. 코마에다 역시 몇 명을 날려버리고는 주변을 살폈다. 미사일런처는 단발식인 구형이었는지 더 이상 날아오지는 않았지만, 몇 기가 더 준비되어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나 다를까, 차 트렁크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굵은 기둥이 보였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식수대는 꽤 튼튼한 편이었지만 미사일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히나타가 잠시 고민하고 있으려니, 코마에다가 몸을 일으켰다. 엄폐물 위로 완전히 노출된 얼굴 바로 옆을 총알 지나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코마에다는 신중하게 총을 겨누고 섰다.
“…코마에다…?”
“쉿,”
런처의 포관이 이쪽을 향해 겨눠지고, 금방이라도 불을 뿜을 것 같이 공기가 팽팽하게 조여 왔다. 앞으로 아마 3초, 2초, 코마에다가 총을 쏘았다.
쾅!!
제법 큰 폭발음이 들려왔다. 런처의 포구 안으로 정확하게 들어간 총알은 그대로 미사일에 명중했다. 발사 직전의 미사일이 폭발하면서 주변의 자동차에 불꽃이 튀었다. 코마에다가 황급히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히나타 역시 얼굴을 집어넣고, 코마에다 바로 옆에 몸을 붙였다. 아마도 차 트렁크에 실려 있었을 기관총들이 불타는 차 안에서 연속으로 폭발하면서 총알을 마구잡이로 쏘아대고 있었다. 투다다다다 하는 소리와 총알이 튀는 소리가 한동안 들려왔다.
“끝났나?”
히나타가 몸을 일으켰다. 대체로 자기들이 가져온 총과 자동차가 폭발하는 통에 부상을 입은 모노쿠마헤드들이 주섬주섬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완전히 박살난 차 두 대가 남아서 불타고 있었다. 쫓아가서 끝장을 내는 것을 선호하는 지부장도 있지만, 히나타와 코마에다가 소속된 지부에서는 소수 인원으로 절망의 잔당을 추격하는 것은 지양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당장 골치 아픈 모노쿠마 무리 소탕에는 성공했기 때문에, 히나타는 별로 조급하지는 않은 마음으로 도망치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
자동차 소음이 골목 너머로 완전히 사라졌을 때 쯤, 코마에다의 목소리가 작게 새어나왔다. 히나타는 고개를 돌렸다. 코마에다가 멍하니 서서 아까 전의 시소를 보고 있었다. 유탄이 튀어서일까, 플라스틱으로 된 시트 하나가 완전히 박살나있었다.
“저건 이제 못 쓰게 됐네.”
“…….”
“뭐 해? 가자, 히나타군.”
목소리에서 아쉬움을 느낀 것은, 히나타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코마에다의 표정은 별로 변화가 없었다. 해가 조금씩 내려오고 있어서 주황빛의 노을이 코마에다의 얼굴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것 뿐이었다. 하지만 히나타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아직 움직일 것 같은데.”
입고 있는 정장이, 가을 날씨에 맞게 약간 두께감이 느껴지는 천으로 되어 있었다는 것이 다행처럼 느껴졌다. 히나타는 상의를 잘 뭉쳐서 시소의 좌석 부분에 깔고는 소매 부분을 돌려서 감아 묶었다. 어쩐지 뿌듯한 얼굴로 코마에다를 돌아보자, 코마에다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히나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자, 이렇게 하면 앉을 수 있으니까.”
“히나타군, 바보 같아.”
“시끄러, 빨리 앉아!”
반대편의 멀쩡한 시트 쪽을 가리켜보았지만, 코마에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이쪽으로 다가왔다. 혹시 양복을 다시 풀어버리기도 하려나 싶어서 히나타가 막아서려 했지만, 그보다 더 빨리 코마에다가 움직였다. 긴 다리를 어정쩡하게 접고 쪼그려 앉은 모습이 시소와 엄청나게 어울리지 않았다.
“…너, 되게 시소 못 탄다….”
“하아…? 왜 기뻐하고 있어?”
“아니, 기쁘달까, 음….”
히나타는 코마에다의 손을 잡고 시소 손잡이 위에 올려주었다. 차가운 금속에 닿아 순간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코마에다는 팔을 빼내지는 않았다.
“손잡이 잘 잡지 않으면 뒤로 넘어가니까.”
“응…. 생각보다 다섯 배 정도 더 수치스러운 자세인걸….”
“이미 앉았으면 포기하고 즐기라고.”
히나타는 웃으면서 반대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키는 비슷하지만 몸무게가 꽤 차이 났기 때문에, 코마에다 쪽 자리가 위로 쑥 올라왔다. 햐악?! 하는 이상한 신음소리를 낸 코마에다가 얼굴을 확 붉히면서 한쪽 손으로 입을 가렸다. 어린이용 시소라 올라갈 수 있는 높이는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에, 코마에다는 반쯤은 앉고 반쯤은 선 자세가 되었다.
“이제 내가 올라갈 거니까, 너는 내려갔다가 다시 반동을 이용해서 올라오는 거야.”
“…어? -히익,”
히나타가 다리로 땅을 박차고 몸을 일으키자 다시 코마에다쪽이 아래로 내려간다. 한 박자 늦게, 코마에다가 엉덩이에 시트를 붙이자마자 다시 위로 휙 올라가는 통에 코마에다는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았다. 끼익끼익 거리는 녹슨 쇠가 서로 맞물리는 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들려왔다.
몇 번이나 위 아래로 이동했을까, 시소에 약간 적응한 코마에다가 다리에 제법 힘을 주고 땅을 밀어내었다. 이제 합이 좀 맞아떨어지니 히나타 역시 훨씬 편해졌다. 시소 건너편에서 코마에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핫…, 진짜 절망적일 정도로 바보같네!”
“그래도 즐겁지?”
“응, 히나타군의 뻔뻔함이 즐거워!”
“나, 참….”
히나타 역시 마주 웃었다. 누가 본다면 취객들로 착각 당할지도 모르는 모습이었지만 어쩐지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해가 완전히 내려가고 공원의 자전거 도로를 따라 선 가로등에 불이 들어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시소가 멈추었다. 히나타는 주저앉아 있는 코마에다에게 가서 몸을 일으켜주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라 확언 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얼굴이 조금 상기되어 있는 것 같았다.
단단히 묶어두었지만, 오르락 내리락 하는 통에 조금 느슨해진 양복 소매를 잘 풀었다. 구깃해진 상의를 다시 입기도 뭣 했던 히나타가 한쪽 팔에 걸쳐 들었다.
“아, 구두에 모래가 엄청 들어갔네.”
걸음을 옮길 때 마다 발이 버석거렸다. 잠깐만, 하고 코마에다의 어깨에 팔을 올리니, 갑자기 느껴지는 묵직함에 코마에다가 몸을 굳혔다. 히나타는 한쪽 팔을 코마에다의 어깨에 기댄 채로 구두 한 짝을 벗었다. 거꾸로 뒤집어서 탈탈 터니 모래와 작은 자갈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대충 털어낸 신발을 다시 신고 반대쪽 구두도 벗으려니, 작게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다른 쪽을 보고 있는 코마에다의 옆얼굴이 보였다.
“왜 그래?”
“이러고 있을 때 습격이라도 당하면 진짜 꼴이 우스워지는 거 알지?”
“뭐, 어때. 네 행운이 있으니까 잠깐은 괜찮겠지.”
“하아….”
눈만 돌려서 이쪽을 슬쩍 보다가, 한심하다는 듯이 바로 다시 시선을 돌린다. 히나타는 어쩐지 장난기가 들었다. 어깨에서 팔이 떨어지는가 했더니 바로 허리를 감싸고 확 끌어안아 버리는 통에 코마에다가 깜짝 놀라서 히나타를 바라보았다.
“히, 히나타군?!”
“네 구두의 모래도 털고 가자.”
“아니, 나는 괜찮으니까 이거 놓고…,”
옥신각신했지만 애초에 근력에서부터 큰 차이가 난다. 버둥거리는 코마에다를 번쩍 들자, 코마에다가 히나타의 팔뚝을 퍽퍽 때렸다. 어차피 별로 아프지도 않았기 때문에 히나타는 그대로 두어 걸음을 움직여 벤치 위에 털썩 앉았다. 히나타의 무릎 위에 앉는 꼴이 된 코마에다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확 들어 올리자 다리가 그대로 딸려온다. 구두를 벗기지 않아도 모래가 후두둑 떨어졌다. 구두를 벗기려고 다가가는 히나타의 손을, 코마에다가 황급히 붙잡았다.
“자, 잠깐, 잠깐만, 히나타군.”
“응, 네가 직접 하려고? 그냥 내가 해줄게.”
“아니…, 그게 아니라….”
코마에다의 목소리가 작게 웅얼거리는 소리로 바뀌었다. 입이 몇 번 달싹이다가, 입술을 꾹 깨문다. 히나타는 일단 코마에다의 구두에서 손을 떼어내고는, 코마에다의 말을 기다렸다. 고개를 푹 숙인 코마에다의 입에서 기어드는 것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늘은 이대로… 집에 가고 싶어….”
“…어?”
“…그, 처음…이었으니까. 시소를 탄 거….”
털어내기 아까워.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히나타의 귀에는 뚜렷하게 들렸다. 히나타의 얼굴이 순식간에 목까지 새빨개졌다. 눈앞에 있는 코마에다의 뒷목도 빨개져 있었다. 코마에다의 허리를 감고 있던 팔이 갑자기 긴장되는 것 같았다. 둘 다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그대로 벤치에 앉아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히나타의 안주머니에 넣어둔 단말기가 갑자기 진동했기 때문이다. 불에 덴 듯이 화들짝 일어나는 코마에다가 히나타의 팔에 갇혀서 다시 무릎 위에 주저앉아 버렸다. 히나타가 깜짝 놀라서 한 박자 늦게 팔을 풀었다.
“…아, 어, 귀환해서 보고를 하라고 연락이….”
“으, 응…. 가야겠네….”
어쩐지 눈을 마주칠 수가 없어서, 히나타는 어색하게 걸음을 옮겼다. 두 걸음 정도 떨어진 위치에서, 코마에다가 히나타를 따라오는 것이 옆 눈으로 보였다. 배정받은 기숙사로 가는 차 안에는 침묵만이 내려와 있었다. 운전에 집중하지 않으면, 하고 생각했지만 자꾸만 곁눈질로 코마에다의 얼굴을 살피게 됐다. 코마에다는 턱을 괴고는 계속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두워진 창문으로는 바깥의 풍경 보다는 차 안의 모습을 더 잘 비치고 있었다. 창문에 비치는 코마에다와 눈이 마주친 것만 같아서, 히나타는 황급히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주말에 시간이 나면 이번에는 망가지지 않은 공원에 가서 시소를 타자. 도시락도 싸고, 돗자리도 챙겨서…. 쑥쓰러운 웃음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히나타는 입 안으로 입술을 조금 깨물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한동안 공원 데이트는 꿈도 못 꾸는 몸이 되어버렸다. 중앙선을 침범해서 갑자기 들이닥친 트럭이 히나타의 차를 덮쳤기 때문이다. 히나타는 황급히 핸들을 꺾었다. 물론 왼쪽으로였다. 코마에다는 털 끝 하나 다치지 않았고, 히나타 역시 큰 부상은 입지 않았다. 단순 골절이니 당분간 다리에 깁스를 하고 안정하라는 말에 히나타는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지만 코마에다의 표정은 끔찍할 정도로 안쓰러웠다. 코마에다, 병간호는 네가 책임지고 해줘. 차라리 뻔뻔한 표정으로 명령하는 것이 이럴 때는 더 도움이 된다. 책임감에 괴로워한 나머지 코마에다가 어느 방향으로 폭주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병간호를 완벽하게 하다가 깁스를 푼 다음 날에 자취를 감출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난 2주 동안 꽤 분위기 좋지 않았나? 히나타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짚이는 구석이라고는 하나 밖에 없었다. 어젯밤에 히나타는 코마에다에게 키스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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