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고가 츠루마루의 방에 온 것은, 점심 식사를 한 지 한 시간 쯤 지난 후였다. 딱히 할 일도 없고, 대련장에 나가기도 마뜩치 않은 기분이었던지라, 방석을 반으로 접어 베고는 빈둥거리고 있던 츠루마루는 누워있던 자세 그대로 이치고를 맞이했다.
“오, 이치. 무슨 일이냐.”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어야 찾아오나요? 차나 같이 한 잔 할까 해서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치고가 방문을 닫고 들어왔다. 그래서 츠루는 곧바로 몸을 세워서 정좌했다.
“웃는 얼굴이 평소랑 달라 보이는 게 내 기분 탓이려나?”
“저는 평소랑 똑같습니다. 그리 생각하시는 걸 보니 켕기는 게 있으신 모양이지요.”
“내가 네 얼굴을 몇 번이나 봤는데. 그걸 구분 못 할 리가.”
부드럽게 달래는 어조로 말 해 보았지만, 이치고는 시큰둥한 눈빛으로 츠루마루의 말을 받아넘겼다. 식기 전에 드시죠. 가져온 찻잔에 입을 가져다 대는 이치고를 따라 츠루마루도 잔을 들었다. 너무 뜨거웠기 때문에 입술만 대었다가 바로 내렸다.
차가 다 식을 동안 눈치를 보며 손을 꼬무작거리는 자기보다 훨씬 나이 많은 칼을 바라보다가, 이치고는 제 동생들에게 하듯이 말문을 열었다.
“아침에 무슨 짓 하셨는지 직접 말해 보시죠.”
“…지나가다가 미츠타다 엉덩이를 때렸지.”
“네, 쇼쿠다이키리씨가 곤란해 하셨죠.”
“아니, 그건 우리끼리는 그냥 인사 같은 건데.”
이치고가 눈썹을 꿈틀 모았다. 츠루마루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또 무슨 짓 하셨습니까. 이치고가 시선을 피하려는 츠루마루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츠루마루가 아까보다 한층 더 기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쿠리꼬마한테 아이스께끼를….”
“대체 왜 그렇게 엉덩이에 집착하십니까. 제가 만져드리는 걸로는 부족한가요?”
그래도 천년 묵은 칼이라 그 정도에 얼굴이 시뻘게지지는 않았지만 츠루마루는 숨을 한 번 들이키고서야 말을 할 수 있었다.
“엉덩이가 아니라! 나는 좀 더 이렇게, 형 같은, 삼촌 같은 장난을 녀석들이랑 치고 싶은 거야! 가족 간의 스킨십!”
“…어디서 또 쓸데없는 걸 배워 와서….”
“응? 잘 안 들렸는데 방금 뭐라고 했-”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가족 같은 스킨십이 그립다면 저한테 먼저 말씀해 주셨어야죠. 저는 그게 마음에 안 듭니다.”
이치고의 ‘마음에 안 든다’는 하세베 언어로 번역하자면 ‘눌러베겠다!’ 쯤이 될 것이다. 연장자의 체면도 있고, 이러니 저러니해도 부끄러워서 말 못했지만 여기서 더 잡다한 수작을 부렸다가는 사흘정도는 운신을 못 하게 될 것이다. 츠루마루는 속으로 한숨을 한 번 쉰 다음에 백기를 들었다.
“…그, 네 손길은, 가족이랑은 다르니까 말이지. 그런, 기분이 들어버리니 문제 아니냐.”
이치고는 츠루마루만큼 뻔뻔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귓가가 붉어지는 걸 미처 숨기지 못했다. 슬쩍 눈치를 보다가 씨익 웃는 츠루마루의 시선을 피하며, 이치고는 다 식은 찻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백기는 저쪽이 먼저 들었는데 진 것 같은 억울한 기분을 느끼며, 그렇다면 오늘 밤은 그 가족 같지 않은 스킨십을 잔뜩 해버리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