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다리 난간에 부딪혀 흩어졌다. 여름 초입이지만 밤공기는 제법 차가워서, 얇은 가디건을 걸쳤어도 목 언저리가 서늘했다. 찬 음료를 마셔서일까. 미카즈키는 멍하니 밤의 강물을 바라보며 빨대를 입에 물었다. 쪼르륵 소리를 내며 얼음 녹은 물이 입 안으로 들어왔다. 음료는 진작에 다 먹었지만 오래 자리를 뜨지 않은 탓이다. 희미하게 남은 커피의 맛이 혀에 껄끄럽게 걸렸다. 커피를 마셨다고 잠을 설치는 체질은 아니지만 오늘밤은 제 때 자기 어려울 것이다. 빨대를 괜히 휘휘 저으며 앞자리에 앉아있는 동행을 바라보았다. 얼음이 많이 녹았는데도 제 앞에 놓인 음료는 손도 대지 않은 채 한 곳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운 커피 다 버리겠구만. 미카즈키는 손을 뻗어 상대방의 음료잔을 집어들었다. 빨대를 입에 가져가는 차에 상대가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조용히 입술을 열었다.
“시럽 안 넣었습니다, 그거.”
“에비, 그대는 정말 센스라는 것이 없구나.”
당연히 내가 한 입 먹어볼 것을 생각했을 터인데. 미카즈키가 아쉬운 소리를 하며 잔을 내려놓았다. 미카즈키와 적당한 교우를 맺은 모든 이들에게 미카즈키는 달고 부드러운 맛을 좋아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아무도 진위를 확인해 본 적은 없지만 다들 그러려니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여기면 피차 배려와 애정을 주고받기 편하기 때문에 미카즈키도 굳이 나서서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카즈키는 이치고 히토후리의 저런 점이 싫지 않았다. 다른 곳에 온 신경을 다 쏟고 있지만, 연인이 ‘싫어하는’ 쓴 음료를 마시지 않도록 챙기는 것도 빠트리지 않는 것이 고맙고 기특하다. 그리고 동시에 조금만 더 자세히 눈여겨본다면 알 수 있었을-미카즈키는 다도에도 조예가 깊고 당연히 쓴 맛을 어려워하지 않는다-것을 몇년이 지나도록 전혀 눈치 못 채고 있는 점은,
“뭐, 나는 그대의 그런 점을 정말로 좋아하네만.”
목소리에 빈정거림은 담기지 않았지만 이치고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보모를 바란다면야 맞춰드릴 의향도 있습니다만.”
“바로 지금처럼?”
자리에 앉은 후 40분 내내 산조다리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이치고가 그제야 고개를 돌려 미카즈키를 바라보았다. 다리 위의 전투는 슬슬 막바지라 소요도 잦아들고 있었다. 어차피 미카즈키와 이치고를 제외하고는 이 가게에 앉아있는 이 중 그 누구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할 싸움이었기에 가게 안의 사람들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단도며 협차를 든 소년들이 가게 바로 옆을 지나갔지만 그 역시 아무도 보지 못했다.
“저는 보모가 아니라 저 애들의 장형입니다.”
미카즈키는 빙긋 웃으며 이미 빈 잔을 들고 이치고 앞에 놓인 커피 잔에 가볍게 부딪혔다. 텅, 하는 조금 둔한 유리소리가 났다. 혼마루의 생활에서는 볼 수가 없는, 스타벅스 로고가 그려진 커다란 유리잔이다. 이치고가 목이 탄 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물이 많아져 밍밍했다.
카모가와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적의 본거지를 치러 나서는 첫 출진이었다. 교토 시내로 들어선 이후 야전이야 익숙해졌지만 동생들끼리 나서는 초행길은 형에게 늘 불안거리이다. 이마노츠루기가 쿠라마산에 올라 그려온 대충의 지도를 본 사니와가 산조다리를 보더니 헛웃음을 웃는 것을 놓치지 않은 이치고가 사니와를 설득해 얻어낸 것이 바로 작은 시공의 왜곡이었다. 장소는 겹치되 시대가 다른 곳이라면 사니와의 힘으로 시간 저 편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전투에 나서거나 간섭하지는 못하고, 오직 지켜보기만 할 수 있다는 설명에 이치고는 잠시 고민했지만 곧 납득했다. 그 이상은 사니와가 하고 싶어도 해 줄 수 없는 영역이다. 그래서 이치고 히토후리와 미카즈키 무네치카는 이렇게 익숙지 않은 현세의 옷을 걸치고 카모강변 스타벅스에서 사니와의 카드로 커피를 사 마시고 있는 것이다.
첫 출진이건만 운이 좋았는지 적의 본진을 찾아내었다는 나팔소리가 들렸다. 가게 밖으로 나서는 것은 허락받지 않았기 때문에 가게 안쪽 골목에서 이루어지는 전투는 소리로 관음할 수 밖에 없었다. 갑갑한 듯 눈살을 찌푸리며 귀를 기울이는 이치고를 잠시 바라보다가 미카즈키가 턱을 손에 괴었다. 하품을 작게 하는 연인의 모습을 본 이치고가 고개를 저었다. 피곤하면 먼저 들어가 쉬시라는 말이 입 밖에 나오기 전 미카즈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졸린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이번은 나도 구경을 하고 싶어서 따라온 것이니 말 말게.”
“제 동생들은 구경거리가 아닙니다.”
물론 미카즈키가 구경하려는 것은 믿음직한 단도들의 전투가 아니라 제 눈앞에 있는 아와타구치의 맏형이다. 딱히 오해를 풀 생각을 없었기에 미카즈키는 그냥 미소를 지었다.
“그대는 시야가 좁지, 정말로.”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이잖습니까.”
이치고가 여상히 말을 받아쳤다. 미카즈키는 소리내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아주 예전에ㅠㅠ 보답 리퀘로 두부님이 단문쓰기 이치미카로 주셔서 쓴 것입니다..
둘 관계는 흥미롭지만 지금껏 커플로는 생각을 못했어서... 노력했지만 너무 어중간하지 않을지 걱정도 되네요 흑흑흡